들어가기 앞서...
벌써 2026년의 절반이 지났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올해는 유독 더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회사에 다니고, 운동을 하고, 사이드프로젝트를 굴리고, 중간중간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되어 있었다.
상반기 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사이드프로젝트다. 몇 개는 출시해서 운영 중이고, 몇 개는 리팩터링하거나 출시 준비를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이 만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이전에 초등학생 때 노트 게임 만들던 감각으로에서 따로 적어두었다. 다만 이번 회고를 쓰려고 보니, 프로젝트를 몇 개 만들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로 보면 꽤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많이 하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뿌듯함만 남지는 않았다.
분명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냈다. 회사 일도 더 빠르게 처리했고, 사이드프로젝트도 계속 굴렸다. 그런데 그만큼 내가 성장했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상반기를 돌아보면 결국 이 질문이 계속 남는다. 나는 많이 만든 걸까, 아니면 많이 넘긴 걸까.
많이 만들었지만, 많이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2026년 상반기에는 AI를 정말 많이 썼다. 2025년에도 많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체감이 또 달랐다. 예전에는 그래도 VSCode가 가장 오래 켜져 있었다. 지금은 클로드가 더 오래 켜져 있다. 코드를 직접 보는 시간보다 AI에게 설명하고, 결과를 검토하고, 다시 지시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주변을 봐도 비슷하다. 아예 코드를 거의 보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는 팀원도 있다. 나 역시 특정 프로젝트의 코드는 아직 꼼꼼히 보지만, 그 외의 코드는 예전만큼 깊게 보지 않게 됐다. 생산성만 보면 분명 좋아졌다. 체감상 AI를 안 쓰고 일하던 시기에 처리하던 업무량의 3~4배는 쳐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때보다 내가 성장한 것도 있을 것이다. 회사도 옮겼고, 경험도 쌓였고, 웹 개발에 대한 이해도도 조금은 올라갔다. 하지만 내가 반년 만에 3~4배 성장했을 리는 없다. 그 차이의 대부분은 AI에서 온다고 보는 게 맞다. 신규 기능 개발, 간단한 버그 수정, 반복적인 리팩터링, 문서 정리 같은 것들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끝난다. 내가 전체 맥락을 알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특히 더 강력하다. 대충 어떤 화면이 필요하고, 어떤 데이터가 오고 가야 하고, 어떤 스타일을 써야 하는지 설명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
물론 한 번에 완벽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혼자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을 작업이 몇 시간 안에 끝난다. 이 정도면 안 쓸 이유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결과물은 늘었는데, 내 안에 남은 것이 그만큼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AI가 채워준 빈칸
원래도 나는 웹 개발이 주력이 아니었다. Flutter 개발자로 일하다가 꽤 급하게 웹으로 스택을 바꿨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빈틈이 많았다. 웹 개발자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을 충분히 쌓지 못한 채 실무와 사이드프로젝트를 병행했다.
브라우저 렌더링, 네트워크, 보안, 접근성, SEO, 서버 렌더링, 캐싱 같은 것들이다. 개발을 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기능을 빨리 만드는 것만으로는 깊게 공부하기 어려운 영역들이다. 예전 같으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식 문서를 읽고, 글을 찾아보고, 직접 삽질하면서 조금씩 채웠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빈칸을 AI가 채워준다.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물어본다. 에러가 나오면 붙여넣는다. 구현이 막히면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면 대체로 그럴듯한 답이 나온다.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면 나는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다. 효율적이다. 정말 효율적이다. 하지만 효율적이라는 말이 항상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직접 부딪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내 안에 남는 것도 줄어들었다. 당장은 해결됐는데,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을 때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냐고 하면 애매하다.
"나중에 제대로 공부해야지."
이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르블랑의 법칙처럼 나중은 오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계속 생기고, AI는 당장 답을 주고, 나는 그 답을 써서 또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결과물은 계속 쌓였다. 그런데 내 실력도 같이 쌓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상반기를 돌아보며 가장 크게 남은 찝찝함이다.
결국 기본기로 돌아오게 된다
상반기 중간중간 AI 활용 능력을 더 키워야 할지, 아니면 CS 기본기를 다시 쌓아야 할지 고민했다. 당장 실무 생산성을 보면 AI 활용 능력이 중요해 보인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처리량 차이는 꽤 크다. 같은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작업량이 달라진다. 실제로 나도 그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채용하는 입장이라면 누구를 뽑을까 생각해보면, 나라면 CS 기본기가 있는 사람을 뽑을 것 같다. AI 활용은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응용에 가깝다. 도구를 잘 쓰는 능력이다. 당연히 잘 쓰면 좋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구성한 AI 작업 플로우나 파이프라인도 몇 주 지나면 클로드나 GPT에 기본 기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토큰을 아끼려고 애쓰면, 모델은 더 많은 토큰을 쓰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컨텍스트가 부족해서 작업을 쪼개면, 얼마 뒤에는 더 긴 컨텍스트를 제공한다. 내가 먼저 알아낸 팁도 며칠 지나면 다들 알고 있다. 팁은 팁답게 가볍다. 반면 기본기는 그렇게 빨리 대체되지 않는다.
물론 CS 지식이 현업에서 매일 쓰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웹 서비스 개발에서는 운영체제나 네트워크, 자료구조의 깊은 내용까지 매일 꺼내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쓰인다. 그리고 그 가끔이 꽤 중요하다. 몰라도 검색하면 되는 시대는 맞다. AI에게 물어봐도 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매번 검색하는 과정은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는 AI의 답이 맞는지 틀린지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과 AI가 아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구분을 못하면 위험하다. AI가 설명해준 것을 내가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 AI가 짜준 코드를 내가 이해한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지면 그때서야 내가 실제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CS 공부 시간을 다시 확보해야 할 것 같다. 거창하게 모든 것을 다시 공부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AI가 대신 메워주던 빈칸을 내가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를 끝까지 보는 힘
기본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고리즘 생각도 많이 났다. 요즘은 알고리즘 문제도 AI가 정말 잘 푼다. 웬만한 문제는 클로드나 GPT가 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푼다. 그래서 "어차피 클로드가 더 잘하는데?", "어차피 GPT가 더 잘하는데?"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놔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AI가 더 잘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나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내 보조 도구가 되어야지, 내가 AI의 출력물을 전달하는 사람으로만 남으면 안 된다.
알고리즘을 잘하면 순수 체급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알고리즘 문제를 공식처럼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투 포인터, DP, 그래프 탐색 같은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주어진 조건을 보고, 병목을 찾고, 시간복잡도를 계산하고, 더 나은 접근을 떠올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알고리즘 문제에서는 현실 서비스에서는 보기 어려운 크기의 데이터가 자주 나온다. 10의 9승, 10의 10승 같은 조건을 보고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실제 회사에서 그런 데이터를 매일 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조건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훈련이 된다. 물론 너무 큰 데이터만 보다 보면 현업에서 오버 엔지니어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일을 한 달만 해봐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한지, 이건 과한지, 유지보수 비용이 더 큰지 같은 것은 실무를 하면서 익히게 된다.
나에게 알고리즘은 현실 문제 해결의 체험판 같은 느낌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알고리즘 실력이 아니라, 문제를 보고 끝까지 생각하는 힘이다. 상반기에는 이 힘을 덜 쓴 것 같다.
회사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반기를 돌아보면 회사 일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사이드프로젝트를 많이 하느라 회사 일에 큰 집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 사이드프로젝트를 했다거나, 일을 내팽개쳤다거나, 기한을 못 맞췄다는 뜻은 아니다. 공과 사는 지켰다.
그런데 뭔가 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있다. 회사의 문제를 더 크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디자인 시스템, SEO, 신규 프로젝트에서 자동 리팩터링 플로우를 추가한 것처럼 기여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퍼포먼스를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생산성뿐만 아니라 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를 더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문제를 더 구조적으로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신규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더 좋은 품질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를 더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회사 밖에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출시하고, 운영하는 경험은 큰 자산이다. 회사에서는 쉽게 해보기 어려운 것들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면 결국 어느 하나에도 깊게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사이드프로젝트의 비중을 줄이거나, 운영을 거의 자동화해야 할 것 같다. 만들 때는 재미있지만 운영에는 시간이 든다. 사용자 문의, 버그 대응, 배포, 모니터링, 정책 변경 같은 것들이 쌓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가져간다.
회사 밖에서 스펙을 올리기 위해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좋지만, 결국 지금은 하나에 더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드는 것의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내가 속한 팀과 제품에 더 깊게 기여하는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해야 할 시기
최근에 한국인들의 대다수가 지루함이나 불안함을 느끼는 상태라는 영상을 봤다. 영상의 비유가 전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하려는 바는 이해가 됐다. 하는 일의 난이도는 쉬운데 보수가 높으면 지루함을 느끼고, 하는 일의 난이도는 어려운데 보수가 낮으면 불안함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중장년층은 지루함을 느끼고, 청년층은 불안함을 느낀다는 식의 설명도 있었다.
진정한 재미는 난이도와 보수가 적당히 맞을 때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요즘 어떤 새로운 것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것은 러닝 정도다. 그 외에는 사이드프로젝트들뿐이다. 그런데 사이드프로젝트도 사실상 기존에 하던 것을 다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배포하고, 운영한다. 주제만 바뀔 뿐, 내가 익숙한 방식 안에서 움직인다.
물론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반복을 통해 숙련이 생기니까. 하지만 너무 익숙한 것만 하다 보면 성장보다는 관성이 커지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무언가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더 깊은 CS 공부일 수도 있고, 알고리즘일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취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하던 것을 계속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독서를 더 해야겠다
독서도 더 해야겠다고 느낀다. 원래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읽거나, 재미가 생기면 읽는 식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읽은 책을 합쳐도 세 권이 안 될 것이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AI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전이었는데, 오히려 AI가 대중화된 지금 더더욱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고하는 과정이 많이 줄었다. 업무 중에 깊게 사고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획과 디자인의 속도도 올라갔고, 그만큼 프로덕트가 나오는 속도도 더 빨라지길 기대받는다.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사고를 빠르게 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포기하고 AI에게 넘겨야 한다.
사고력이 높으면 빠르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AI에 절여진 지금은 빠르게 사고하는 것이 어렵다. 답을 바로 받는 습관이 생기면, 생각을 오래 붙잡는 힘이 약해진다. 그래서 사고력을 다시 훈련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 훈련 중 하나가 독서라고 생각한다.
소설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업무적 사고력에 가깝다. 인터넷 소설이나 만화가 주는 재미와 상상력도 있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사고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고력 증진을 기대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방향인 것 같다. 물론 만화도 만화 나름의 사고력 증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상상력 증가가 아니다. 복잡한 글을 읽고, 논지를 따라가고, 내 생각을 더 정확한 언어로 바꾸는 힘이다.
AI 시대에는 말과 글이 더 중요해진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다. 표현이 모호하면 결과물도 모호해진다. 이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기보다는 그냥 글쓰기와 사고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거창한 교양 쌓기보다는,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회복해야겠다는 쪽에 가깝다.
시니컬함은 도움이 안 된다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경계해야겠다고 느낀 태도도 있다. "어차피 AI가 더 잘하는데?", "어차피 클로드랑 GPT가 다 해줄 건데?" 같은 말이다. 이런 말은 어느 정도 맞다. AI가 더 잘하는 부분이 있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기를 멈춰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 시니컬한 것이 똑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니컬한 태도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그만둔 것에 가까울 때가 많다. 시니컬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차피 안 될 건데?", "어차피 바뀔 건데?", "어차피 다 똑같은데?" 같은 말은 쉽다. 그리고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처럼 보인다. 실제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때, 시니컬한 사고는 결정을 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잘라내고, 신경 쓸 것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니컬한 판단은 결과론적이다. 이미 나온 결과를 보고 "거봐,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그런 식의 판단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과론적인 사고를 역사 공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역사 공부와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를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몇 년 뒤에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기술이 표준이 되고, 어떤 도구가 살아남을지는 나중에 보면 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어차피 AI가 다 할 텐데"라고 말하고 내려놓는 것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는 편이 낫다. 냉소는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성장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마치며
아무래도 2026년 상반기의 핵심은 AI와 생산성인 듯하다. AI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들을 혼자 처리했고, 여러 사이드프로젝트를 동시에 굴렸고, 회사 일에서도 더 많은 업무를 쳐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놓친 것도 있었다. CS 기본기, 알고리즘, 직접 디버깅하는 힘, 깊게 생각하는 시간, 독서, 회사의 문제를 더 크게 해결하려는 집중력. 이런 것들은 AI가 대신 채워주지 않는다. AI가 답을 줄 수는 있지만, 내 안에 체화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AI를 덜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AI로 덮어버린 빈칸을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일부러 느리게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성은 이미 많이 올라갔다. 이제는 그 생산성을 받쳐줄 기본기를 다시 쌓아야 한다.
많이 만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결국 오래 가려면 내가 단단해야 한다. AI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좋아져야 한다. 도구만 좋아지고 내가 그대로라면, 언젠가는 그 도구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상반기에는 많이 만들었다. 하반기에는 조금 더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회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년 하반기 개발회고 (0) | 2026.01.01 |
|---|---|
| 2025년 상반기 개발회고 (2) | 2025.07.21 |
| 하지톤 회고 (0) | 2024.08.02 |
| 1D1S 시즌2 한 달 회고 (0) | 2024.02.02 |
| 1D1S 시즌2 2주차 회고 (0) | 202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