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출퇴근길,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켠다. 지인들의 소소한 일상보다는 릴스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낸다.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을 둔 채, 주로 유머나 개그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해 준다. 개중에는 가끔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룬 릴스가 섞여 있기도 하다.
보통 그런 영상의 댓글창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기에 굳이 열어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댓글창을 열었다가 후회하는 일이 종종 있다. 원본 영상의 일부만 잘라낸 릴스를 보다 보면, 같은 내용임에도 댓글 반응이 천차만별인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첫 댓글의 논조에 따라 전체 여론이 형성되는 현상, 즉 '누가 먼저 어떤 평가를 내렸느냐'가 집단의 반응을 결정짓는 미묘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첫 댓글이 여론을 주도한다고는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체 댓글의 80%가 불과 10%의 사용자에 의해 작성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대형 커뮤니티에서 목격하는 뜨거운 논쟁이나 지배적인 여론이, 실제 대중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허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 허상을 실재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집단 착각'이라 부른다.
<집단 착각>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집단 착각의 유형과 발생 원인,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다룬다. 평소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가 얼마나 쉽게 착각에 빠지는지, 그리고 그 착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순응: 침묵, 암묵적 동의
집단 착각을 일으키는 첫 번째 요인은 '순응'이다. 책에서는 순응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이를 '암묵적 동의'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일상에서 명시적인 의사 표현 없이 맥락상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계약서 하단의 "별도의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암묵적 동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지적 자원을 극도로 아낀다. 뇌는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 수많은 정보 중 필요한 것만 선별하고, 편견이나 선입견을 통해 대상을 빠르게 파악하려 한다. 모든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다가는 금세 지치고 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암묵적 동의는 인지 자원을 절약하고 사회적 절차를 간소화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상식이나 절차를 생략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암묵적 동의'가 상호 확인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낯선 길을 함께 걷는 두 사람을 상상해 보자. 지도 앱은 우회전을 가리키지만, A는 B가 직진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따라간다. B 역시 A가 멈추지 않기에 'A가 길을 아나 보다' 생각하며 직진한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둘은 묻는다. "너 길 아는 거 아니었어?" "난 너 따라온 건데?"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길을 안다고 '착각'했고, 그 착각은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순응했기에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집단의 규모를 막론하고 일어난다. 동아리, 회사, 국가 등 모든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불합리함을 느끼면서도 '나만 불편한가?'라는 생각에 침묵한다.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기에, 조직은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고 개선은 요원해진다. 불필요한 프로세스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개인의 용기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집단의 분위기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것은 곧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혹은 내가 틀렸다면? 이러한 두려움은 침묵을 강요한다. 따라서 집단 착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용기보다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익명 설문조사나 정기적인 프로세스 점토 타임 등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딜레마: 집단 압력
순응과 암묵적 동의가 집단 착각의 씨앗이라면,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는 '규범'과 '전통'이라는 거대한 뿌리로 자라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을 갈구하며, 집단에 해가 되는 행동에 거부감을 느낀다.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행위를 목격했을 때 느끼는 불쾌감은 뇌의 혐오 반응 영역을 활성화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개자식이 아니에요"를 증명하려 애쓴다.
이러한 본능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순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착시 현상을 유발한다. 책에 소개된 실험들은 충격적이다. 집단이 틀린 정보를 주장할 때, 개인은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의 의견을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집단에서 배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스로의 인지마저 왜곡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집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나 시대착오적인 관습조차 '집단이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불필요한 의식이나 악습이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지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수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모두가 이것을 원한다'고 착각하게 되고, 그 착각은 다시 침묵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하면서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모두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분위기 탓에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남들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라며 체념한다. 이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현실과 타협한다는 합리화이자, 동시에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은밀한 우월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단 착각>은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일까?
신뢰: 착각을 깨는 열쇠
그 근본적인 원인은 '신뢰의 부재'에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캠과 피싱이 횡행하고 각자도생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된다. 섣불리 믿었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인 세상, "속는 사람이 바보"라는 냉소적인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집단 착각의 기저에는 '타인이 내 진심에 공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 있다. 내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고 나만 고립될 것이라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착각을 공고히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먼저 신뢰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순진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는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상대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취약한 면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이 과격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이 신뢰에 부응하지 못해도 타인의 신뢰를 제공한다.
누군가를 먼저 믿는다는 것은 배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습성이 있다.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취약함을 드러내고 신뢰를 보낸다면, 비록 배신당할지라도 그 모습은 누군가에게 강렬한 울림을 줄 수 있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신뢰를 선택하는 태도' 자체가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이러한 행동이 확산된다면 언젠가는 사회 전반의 신뢰 자본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며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세상에서 무작정 타인을 신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된 신뢰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책에서는 "신뢰가 깨졌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손해인가?"를 자문해보라고 조언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그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에 잠식되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불신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세상일지라도, 누군가는 먼저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그 손이 상처 입을지라도, 그 용기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 물론 맹목적인 신뢰가 아닌,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현명한 신뢰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서로를 믿지 못해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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